평화의 세상을 위한 새싹

2026년 07월 20일

인류 전체가 한 가정이라는 비전을 가지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와 일치가 있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이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류를 하나의 가정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분은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며 그들을 돌보고 도와주십니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다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사소한 일까지 지켜보시고,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시려고, 먼저 당신이 그 짐을 짊어지십니다.
(…)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을 우리 일생의 이상으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을 배려해 주시는 아버지의 현존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분을 사랑해 드리도록 해 주며, 매일 매일 우리 각자를 위해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의 계획을 실현하게 해 줍니다. 즉, 그분의 뜻을 이루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첫 번째 뜻은 자녀들이 서로 형제로서 사랑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예술을 알아야 하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의 예술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간디의 말처럼 “이웃과 나는 단 하나이므로,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예술은 상대방이 우리를 사랑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예술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상대방의 짐과 생각, 고통과 기쁨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을 실천할수록, 그 사랑은 상호적인 관계로 발전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시며 모든 사람의 형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게 서로간의 사랑을 법으로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인류가 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 평화와 일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움과 폭력이라는 산을 옮기는 과제는 누구에게나 무겁고 힘든 일입니다. 분열되고 고립된 수백만의 사람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해 보일지 모르지만, 서로간의 사랑과 이해, 일치가 삶의 가장 중요한 동기인 사람에게는 가능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새로운 영성은 서로간의 사랑과 연관된 소중하고 놀라운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두 사람 이상이 참된 사랑 안에서 일치한다면,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 사이에, 곧 그들 안에 현존해 계신다고 말합니다.
형제애와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현존보다 더 확실한 보장이 또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큰 가능성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서로간의 사랑과 일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매일 희생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이를 실천했을 때는 커다란 기쁨이 따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온통 빛이지만, 또한 비극적인 한 마디가 있습니다. 이는 어리석고 비합리적이며 무의미해 보이므로, 세상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입니다.
그 말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세상에서 힘들이지 않고 고통을 치루지 않으면, 즉 십자가가 없으면 참으로 좋고 유익한 것을 이룰 수 없으며,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합니다.
평화를 위해 살고 이를 전한다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용기가 필요하고 고통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사랑으로 고통을,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고통을 받아들인다면, 고통은 인류를 가장 존엄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즉, 인류는 여러 민족이 서로 투쟁하는 사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백성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 힘든 여정에 있는 우리를 위해 많은 도움을 남겨 주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이러한 도움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는 성모 마리아를 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인들도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예수님과 모든 이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고,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가정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공동체적인 영성은 어느 한 교회에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성은 보편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 영성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결실이 풍성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많은 교파의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그리고 여러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과의 대화입니다.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도 이 영성이 그들이 믿는 가치를 강조하는 것을 보며, 모두가 원하는 완전한 진리를 향해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각자가 있는 곳에서 보잘것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특별한 연대하며 이 영성을 통해 단호하면서도 서서히 새로운 백성의 새싹, 평화롭고 좀더 일치된 세상의 새싹이 되고자 합니다.

끼아라 루빅
이미지 출처: ChatGPT(OpenAI)를 사용하여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