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형제애를 향한 길

2022년 06월 27일

우리 일상의 노력과 노동, 관계들이 일치된 세계를 건설하는 길이 될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 아침,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판단하지 않고 신뢰하며, 항상 바라고 믿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와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이웃들과 실천하기를 청하는 자비와 미덕의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류 위에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은 세상 사람들이 보편 형제애를 사는 것입니다. 불가피한 분열과 긴장, 그리고 오해와 실수로 마음속에 스며드는 미움보다 더 강한 형제 애를 지니는 것입니다.

용서할 줄 모르기 때문에 흔히 가정들이 파괴됩니다. 오래 묵은 증오가 친척들과 사회 단체들, 그리고 백성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편에게 당한 불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복수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한은 마음에 독을 뿌리고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용서란 약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는 참으로 큰 용기의 표현이며, 사심이 없으므로 참된 사랑입니다. 가장 참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이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므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2-47 참조)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생활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특히 잘못을 한 사람들에 대해, 그분처럼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공동 영성, 즉 그리스도교 영성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신약 성경은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콜로 3,13 참조)라고 하면서 더욱 큰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로 약속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는 언제나 서로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보편 형제애를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웃을 용서해 주라고 당부할 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느님에게서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것만큼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

사실 마음이 증오로 굳어 있다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알아볼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 더 나아가 그에 앞서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합니다. 즉 매일 아침 집, 학교, 직장, 상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대해야 합니다. 그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를 뛰어넘으며, 판단하지 않고 신뢰하며, 항상 바라고 믿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모든 이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각 사람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의 단점을 전혀 기억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를 돌아보며 우리가 실수나 인내심을 잃고 내뱉은 말에 대해서는 용서를 청하거나 다정한 행위로 이를 보상하도록 노력하기로 합시다. (…)

이렇게 한다면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드릴 때, 특히 그분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도록 청할 때,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득한 마음으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끼아라 루빅